MB의 특명…'산으로 가는' 택배 정책
[CLO=김철민 기자]
"산재보험이요? 그 돈을 누가 냅니까? 아마 이명박 대통령은 대형 택배사와 택배기사가 반반씩 분담할 걸로 알고 있겠죠. 그런데 택배사가 직접 고용한 택배기사는 전체인원 중 10%가 채 되질 않을 겁니다. 대부분 중소운송업체나 영업소(대리점) 등 영세개인사업자들이 지입형태로 택배기사와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러면 결국 서민들끼리(영세업자와 택배기사)만 보험료를 분담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OO택배 영업소 김OO씨)
정부가 지난 8일 제1차 서민생활대책 점검회의에서 내년 상반기부터 택배기사(특수고용직)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 종사자들은 오히려 보험료 부담이 자신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킬 것이란 지적이다.
방안에 따르면 택배사와 계약관계가 비교적 분명한 택배기사는 사용주에 해당하는 택배사와 택배기사가 반반씩 산재보험료를 부담한다. 예를 들어 택배기사의 월 평균 수입이 200만원이라면 택배사와 택배기사는 각각 월 2만원씩을 내야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루 평균 14시간 근무, 도로 등 곳곳에 배달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는 택배기사들과 그 가족들에게 산재보험 적용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업계는 택배기사들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정책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먼저 택배시장의 고질적 병폐인 수익성 악화와 차량지입제, 다단계 운송계약 구조 등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백약이 무효하다는 주장이다.
우선 택배사와 택배기사 간 산재보험료 분담이 현실과 다른 게 문제다. 정부안에 따르면 택배사와 택배기사 간 고용형태로 간주해 회사와 근로자가 50:50으로 보험료를 내도록 했다. 그러나 전체 3만여명 정도로 추정되는 전국의 택배기사 중 90% 이상이 해당 택배사가 아닌 중소운송협력업체와 대리점(영업소)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자와 계약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모 택배업체 배송기사는 "지난 10년간 기름값은 계속 오르고, 택배요금은 계속 내리고, 택배기사가 가져갈 배송수수료 인상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산재보험료까지 내라고 하면 가계에 더 부담이 되지 않겠냐"며 "어느 정도 수입이 돼야 보험료를 낼 수 있을 텐데…"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산재보험 적용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이들 영세운송업체와 개인사업자들이 택배기사와 비용을 분담해 선뜻 이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이 대형 택배사들에게 고통분담을 주문한 사회적 책임과도 거리가 멀다. 산재보험에 대한 부담을 기업과 서민이 반반씩 부담하는 것이 아닌 서민과 서민이 모두 책임을 져야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통합물류협회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모 택배사의 터미널을 방문해 택배기사들과 간담회를 갖은 뒤 관계부처에 택배기사들의 산재보험 적용을 지시한 것에서 비롯됐다"며 "그런데 보름 만에 정책이 나온 걸 보면 주무부처가 좀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협회에서 업계의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을 정부에 충분히 설명하고, 택배기사들의 근로 개선을 위한 총체적인 제도개선을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전담 공무원의 잦은 자리이동과 실적 위주의 정책으로 인해 대통령의 의중과 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아쉽다고 설명했다.
반면 택배업체들은 고용노동부와 국토해양부 등 개별부처가 택배기사들의 근무 여건 개선을 일일이 챙기기 보다는 택배산업이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택배법 제정 ▲화물차 증차 ▲표준운임제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 범정부 차원의 통합적인 육성정책을 내놔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높였다.
업체 한 관계자는 "택배산업 육성에 대한 제도 마련과 규제가 개선이 되면 이에 따른 택배사들의 수익성확보로 향후 택배기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고,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들의 근로환경과 복리후생이 증진되지 않겠냐"며 "정부가 큰 틀에서 택배업을 육성시키는 방안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택배기사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해 ▲위·수탁 등 업무여건 개선/밤샘 주정차 허용(국토해양부) ▲산재보험 적용(고용노동부) ▲불공정 거래 관행 감시 강화(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대해 관련 택배업체와 협의를 거쳐 내년 초부터 시행한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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