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송상화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
#1. 낮은 운송단가와 과도한 경쟁으로 수익이 악화되고 있는 한국의 택배 시장과 달리 일본의 택배 및 운송서비스 시장은 야마토와 사가와큐빈이 양분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야마토와 사가와 큐빈의 시장 점유율이 2002년 59.7%였던 것이 2006년 67.4%, 2010년 76.8%로 급성장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쟁기업들의 점유율은 급격히 감소하였다는 것이다.
#2. C.H.Robinson은 BusinessWeek 매거진에서 선정하는 Top 50 기업에 나이키, 애플 등과 함께 매년 이름을 올리는 물류기업이다. 2009년의 경우 구글, 스타벅스, 아마존닷컴, 나이키 보다 앞선 6위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재무성과가 탁월한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된 이유는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오히려 높은 수익을 확보하였다는 것이다.
[CLO] 야마토와 사가와큐빈은 터미널, 간선 수송 등 물류 네트워크에 대한 집중 투자를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더 넓은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범위의 경제를 확보하여 경쟁기업보다 더 낮은 비용을 제공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산형 물류기업이다.
규모와 범위의 경제에 기반한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더 많은 고객이 야마토와 사가와큐빈을 이용하게 되면, 이는 다시 투자로 이어져 더 높은 수준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일부 틈새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이들 자산형 물류기업이 과점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 진입 장벽 자체가 높아져 단순히 인건비를 낮추어 경쟁하는 방식으로는 이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야마토나 사가와큐빈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소화물 택배 운송과 달리 트럭운송 시장은 트럭 1대만 있어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해당 트럭을 유지하기 위한 화물만 유치하면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로 인하여 규모의 경제가 큰 의미가 없는 사업 영역이다. 트럭을 많이 보유하게 되면 부품 정비, 차량 구매 등에서 일부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나 트럭운송비용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부분은 연료와 인건비 부분이기 때문에, 트럭운송 시장은 특정 기업의 독과점이 아닌 다수의 소규모 기업들이 치열히 경쟁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트럭운송 시장에서 C.H.Robinson은 트럭을 보유한 운송기업과 화주를 연결해주는 비자산형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운송기업과 화주 입장에서는 3자 물류업체가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는 것보다 직거래를 통해 단가를 낮추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비자산형 물류기업인 C.H.Robinson이 BusinessWeek Top 50에 매년 선정된다는 것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그러나 화주 입장에서는 개별 운송 기업을 평가하고 최적의 기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탐색 및 거래 비용 손실이 크고, 트럭운송 기업입장에서도 고객 유치의 불확실성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화주는 C.H.Robinson을 통해 5만개 이상의 트럭운송기업간 경쟁에 기반한 최적 기업을 선택할 수 있고, 트럭운송기업 역시 특정 화주와의 직접 계약에 의한 수요의 불확실성 보다는 다양한 고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더 선호하며, 이 과정에서 제공되는 물류 중개 서비스에 대해 기꺼이 합당한 수수료를 지불한다.
불황이 오게 되면 화주와 운송기업은 비용절감과 안정적 물량확보라는 목d표에 더욱 충실해지기 때문에 불황이 오히려 비자산형 물류기업인 C.H.Robinson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주게 되고, 이것이 2009년 최고의 혁신기업 6위로 선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트럭 1대를 구매하여 낮은 비용과 최선의 서비스로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이미 화주와 트럭운송기업을 확보하고 있는 C.H.Robinson과 경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들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최근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이 국정 운영의 핵심 어젠다로 선정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 관행 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동반성장위원회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여 대기업의 진출을 불허하는 규제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적 관심과 압박 속에 대표적 불공정 분야로 지목된 MRO 산업에서는 대기업들의 자회사 매각 혹은 사회적 기업화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MRO 산업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은 기존의 대기업 MRO 자회사들이 부가가치 창출없이 중간 유통 수수료만 받는 Toll Gate Business 모델로 운영되어 왔으며, 중소기업들의 이윤을 축소시키고 대기업 물량을 바탕으로 과도한 단가 하락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물류산업 역시 MRO 산업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계열 물류기업들의 기존 영업 방식에 대해 불공정 여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류산업 전체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낮은 서비스 단가와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비용 위주의 계약 방식에 대한 불만이 동반성장과 맞물려 물류산업에 대한 대기업의 진출을 규제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물류산업의 발전과 혁신을 이끌어 온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통해 확보한 낮은 비용과 높은 서비스 수준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조화로운 역할 분담이 필수적이다. 야마토와 사가와큐빈은 간선수송에 소규모 트럭운송 기업들을 활용하며, 물량을 바탕으로 이들에 대해 낮은 단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터미널 운영, 전국을 커버하는 넓은 네트워크에서 경쟁력이 발생한다. C.H.Robinson 역시 물량에 기반한 단가 후려치기가 아니라 혁신적 정보시스템과 트럭운송기업-화주 네트워크에서 경쟁력이 확보된다. 소규모 트럭운송 기업들은 안정적 물량에 기반하여 함께 동반성장한다.
획일적 규제는 혁신적 아이디어와 대규모 투자를 사라지게 하여 전체 물류산업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소규모 기업들은 오히려 소모적 비용 경쟁으로 내몰려 전체 산업이 다같이 경쟁력을 잃게 되고, 중소기업을 보호하려던 규제와 정책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대규모 기업들은 적절한 투자없이 단순히 자체 물량을 기반으로 Toll Gate Business 모델로 운영되어선 안될 것이며, 소규모 기업 역시 혁신적 아이디어, 재빠른 시장 대응력 없이 시장에 대한 규제만을 외쳐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 공정하고 조화롭게 거래관계가 이루어지는 문화 정립과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흔히 “갑-을-병”으로 얘기되는 물류 서비스 시장에서 “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류기업은 단순한 하청업체로써의 “병”이 되거나 혹은 화주에게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필요한 부분에서 선생 역할을 담당하는 “수퍼 갑”이 되는 2가지 선택만이 존재한다. “수퍼 갑”이란 “갑”으로 지칭되는 화주가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길 원하는 혁신적 서비스 제공 기업을 의미한다. 지금의 물류산업은 향후 영원한 “병”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아니면 “수퍼 갑”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 물류산업을 구성하는 모든 참여자들의 혜안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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